
형주고성은 북방의 성지와 같지 않고 네모나고 바르며 축선이 대칭적이고 지세에 따라 기복하고 호수를 따라 우회한다.구불구불하고 건물이 정교하다.형주의 고성벽은 삼국에 형성되였고 5대에 벽돌성벽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존하는 성벽은 명청성벽으로서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지속시간이 가장 길고 왕조를 가장 많이 뛰여넘어 최초의 토성에서 벽돌흙이 합쳐진 유일한 고성벽으로 변화되였다.전체 길이는 11.28킬로미터이고 6문 9층이 있다.현존하는 6문 2층, 장병동 5개, 포대 26개, 옹성, 복성문 등은 매우 완전하다."중국 남방의 흔치 않은 완벽함"으로 불린다.


1. 빈양루(관광 명소)
빈양루는 징저우 고성의 인빈문 위에 위치하며, 명대에 창건되고 청나라 함풍 11년(1861)에 중건되었습니다. 1986년 8월 국가문물보호과학연구소가 설계·재건하여 1987년에 내외국인 관광객에게 정식 개방되었습니다. 건물은 이중 처마의 사다리꼴 합각 지붕(혈산정)과 대형 목구조를 채택하여 명대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상층에는 외부 회랑이 있고, 동쪽 처마 아래에는 자오푸추가 해서로 쓴 금문 ‘빈양루’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빈양루는 징저우 고성의 핵심 명소로, 누각에 올라 고성의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2. 징저우 성벽 건조 공법 전시관(관광 명소)
길이 19.3m, 높이 7.2m, 두께 약 1m의 이 ‘건타루이’ 성벽은(모래·석회·찹쌀풀로 층층이 다져 쌓음) 2000년 8월 위안안문(소북문) 옹성 보수 과정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고증에 따르면, 다짐층 두께는 0.19m이며 각 층 사이에 배수공이 있고,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이 지났습니다. 전시관에는 명·청대의 문자 전돌도 전시되어 있어 성벽 수축사와 행정 구역 변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조종루(관광 명소)
조종루는 고성벽 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건축입니다. 청나라 도광 18년(1838)에 건립되었으며, 이름은 ‘조종루’입니다. (용마루 아래에는 “대청 도광 18년(1838) 무술년 9월 임술 초열흘 무신 길시 정사시 중건”이라는 재건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문루는 천투식과 대량식 두 가지 목조 방식을 병용하였습니다.
5. 공안문 및 성대(관광 명소)
공안문은 동성벽 남단에 위치하며, 본래 ‘소동문’이라 불렸고 청대에 공안문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주 성대와 전루 성대의 이중 성문으로 이루어지며, 두 성대 사이를 벽으로 둘러 옹성을 형성하여 평면이 반원형에 가깝습니다. 홍예문 안쪽에는 낙성쇠 홈과 천창이 있으며, 전루 성대의 기초는 큰 청석으로 쌓아 해자 제방에서 곧장 위로 올렸습니다. 성문 밖에는 옛 나루가 있어 내륙 수로를 통해 양쯔강으로 통했기에 ‘수문’이라 불렸고, 징저우 성에서 유일한 수문입니다. 성루의 원명은 왕강루, 후에 초망루로 개명되었습니다. 일본군 침략 전란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유적지만 남아 있습니다.
6. 남기문 및 성대(관광 명소)
남기문은 남성벽 중단에 위치하며, 통칭 ‘노남문’입니다. 주 성대와 전루 성대의 이중 성문으로 이루어지고, 두 성대 사이를 둘러 옹성을 이룹니다. 다른 성대에 비해 규모가 크고, 주 성대와 전루 성대가 남북 동일한 중심축상에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옹성 양측에는 대칭적으로 아치형 측문이 열려 있고, 두 통로가 십자형으로 교차하며 큰 청석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성루명은 ‘곡강루’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개원 연간(731~741)에 재상 장구령이 징저우 장사로 좌천되어 이 누각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습니다. 장구령이 당의 운주 곡강 출신이기에, 후세는 이를 기려 성루를 ‘곡강루’라 명명했습니다. 일본군 전란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대지 유적만 남아 있습니다.
7. 안란문 및 성대(관광 명소)
안란문은 서성벽 중단에 위치하며, 통칭 ‘서문’, 본래 명칭은 용산문입니다. 청 건륭 53년(1789)에 서성벽 여러 구간이 홍수로 무너졌고, 보수 후 ‘안란문’(수해를 안정시키고 천하 태평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주 성대와 전루 성대로 구성되며, 사이를 둘러 거의 방형의 옹성을 이룹니다. 주 성대 양측에 보행 계단과 마도가 있고, 내측 홍예문 위에는 해서 ‘안란문’ 석편액이 박혀 있습니다. 성루의 원명은 ‘구양루’였으며 일본군 전란으로 소실되었습니다. 해방 초기에는 삼간, 이중 처마의 박공지붕 성루가 세워졌으나, 노후와 인위적 훼손으로 위험 건축물이 되어 1983년에 철거되었고 성대의 주좌 배치만 남았습니다.
8. 공극문 및 조종루(관광 명소)
공극문은 북성벽 서단에 위치하며, 통칭 ‘대북문’입니다. 송대에는 유문, 명대에는 공신문으로 불렸고, 청 건륭기에 공극문으로 개명되었습니다. 남을 등지고 북을 향하며, 외측에 전루 성대와 옹성이 있고 양측에 계단과 마도가 있습니다. 성루명은 ‘조종루’로, 강한의 물이 조정으로 모인다는 뜻입니다. 청 도광 18년(1838)에 중건되었고, 오간 삼심의 대형 목조건축으로 이중 처마의 혈산정입니다. 1층에는 외부 회랑, 2층에는 우물틀 난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소박하고 단정하며 기세가 웅장하여, 징저우 성벽에 현존하는 유일한 청대 고성루입니다.
9. 위안안문 및 성대(관광 명소)
위안안문은 북성벽 동단에 위치하며, 통칭 ‘소북문’, 옛 명칭은 유성문으로 청대에 ‘위안안문’(북방의 안정을 기원)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주 성대와 전루 성대로 이루어지며, 사이를 둘러 장방형의 옹성을 형성합니다. 주 성대 양측에 보행 계단과 마도가 있고, 내측 홍예문 위에는 해서 ‘위안안문’ 석편액이 박혀 있으며, 상단에는 “청 건륭 기유년 8월”, 하단에는 “징저우부 남사 장방리가 세움”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성루의 원명은 ‘경룡루’였고, 일본군 전란으로 소실되었습니다. 2000년 성대 보수 과정에서 서측에 석회와 찹쌀풀로 다져 쌓은 성벽이 발견되어, 보호와 전시를 강화하기 위해 ‘징저우 성벽 건조 공법 전시관’을 건립, 2001년 5월에 일반에 개방되었습니다.
10. 24호 장병동(관광 명소)
24호 장병동은 징저우 성 남성벽의 사갑산 서측 약 300m 지점(통칭 백마정)에 위치합니다. 평면은 정방형이며, 세 면의 벽체는 송대 전돌로 쌓았고, 네 면 벽은 우물처럼 급경사입니다. 내부에는 방어 플랫폼이 있으며, 정면과 측면 벽에 총 5개의 망루구(사공)가 있습니다. 하부 서측에는 성 밖으로 통하는 은문이 있고, 1999년 8월에 보수되었습니다.
11. 백마정(관광 명소)
백마정은 성벽 위의 중요한 군사 시설(24호 장병동)로, 징저우 성 남성벽 사갑산 서측 약 300m 지점에 있습니다. 평면은 정방형이고, 세 면의 벽체는 송대 전돌, 네 면 벽은 우물처럼 급경사입니다. 서쪽 벽 하부에는 비상 은문이 있어 1인 1마가 통과할 수 있습니다. 성이 포위되고 성문이 폐쇄된 긴급 상황에서 성내의 전령이 백마를 타고 이 문으로 출성하여 급보를 전하고 구원을 청했습니다. 동굴이 우물처럼 깊고 백마가 이곳을 드나들었다 하여 ‘백마정’이라 불립니다. 1999년 8월에 보수.
12. 18호 장병동(관광 명소)
18호 장병동은 공극문(대북문) 동측 약 380m 지점에 위치하며, 남을 등지고 북을 향합니다. 세 면 벽체 길이는 약 280m이고, 내부는 3층 구조로 하층과 중층은 병사 휴식 또는 주둔 공간, 상층은 보행로와 연결되어 보초 및 사격에 사용되었습니다. 정면과 측면 벽에는 총 5개의 망루구가 배열되어 있어 적정을 관찰하고 방어 사격을 했습니다. 1979년 6월에 보강·수선되었습니다.
13. 25호 장병동(관광 명소)
25호 장병동은 남기문 서측 224m 지점에 있으며, 원래는 마면(포대)이었습니다. 2007년 보수 중에 발견되었고, 서로 다른 적층토에서 다량의 사기편(그릇·접시·잔·숟가락)과 인골 3구가 출토되었습니다. 내부는 2층 회랑 구조이며, 정남 벽과 양 측면에 총 5개의 망루구(사공)가 있고, 사방 내벽에는 보를 걸었던 구멍이 남아 있습니다. 2008년 5월 정리 및 수선을 완료했습니다.
14. 삼관필 유적(관광 명소)
문봉(문풍)이라고도 불립니다. 『강릉현지』에 따르면 삼관필은 명말 청초에 이미 존재했으며, 원래 명대 징저우부 문묘의 부속 건축으로, 징저우부의 세 문장가, 즉 공안의 원종도·원홍도·원중도 삼형제(‘공안 삼원’)를 상징합니다. 평면은 약간 삼각형 배치로, 가운데의 필이 앞에, 동서의 필이 뒤에 놓입니다. 1960년 4월, 옛 강릉현 인민정부가 현급 문물보호단위로 공포했으나, 문화대혁명 기간에 철거되었습니다.
15. 송갑산(관광 명소)
‘송갑산’은 북성벽 신북문 서측에 위치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관우가 이곳에서 갑옷을 느슨히 하고 잠시 쉬었다 하여 이름이 붙었습니다. 징저우 성의 ‘삼산불견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청 건륭 『강릉현지·산천』에는 “송갑산, 성북에 있으며, 관성(관우)이 여기서 갑옷을 느슨히 하였고, 또한 사당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말에 파괴되었습니다.
16. 사갑산(관광 명소)
‘사갑산’은 남성벽의 신남문에 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관우가 개선 후 이곳에서 갑옷을 벗고 장병을 위로했으며, 성내외의 누대와 시가지를 조망했다고 합니다. 1992년에 무너진 성벽을 트고 신성문을 설치하면서 서쪽 절반이 깎였습니다. 2008년 국가문물국의 동의와 후베이성 인민정부의 비준을 받아 여기에서 관우사를 복건했습니다.
17. 질갑산(관광 명소)
‘질갑산’은 징저우 성 서북 모서리에 위치합니다. 옛날 여몽이 ‘백의 도강’으로 징저우를 기습했을 때, 관우가 상양·번성에서 군을 이끌고 구원하러 돌아왔으나, 성 밑에 이르러 수비 장수가 이미 성을 동오에 바쳤음을 알고 통한해 하며 “이 성은 내가 쌓은 것이라, 공격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갑옷을 이곳에 던졌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거두다’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18. 세 적루 유적 소개
중선루
중선루는 징저우 성 동성벽 남동 모서리 굽은 곳에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원래 이름은 ‘망사루’이며, 한대에 창건되었습니다. 동한 말의 문인으로 ‘건안칠자’의 수장인 왕찬(자 중선)은 징저우에서 유표에게 의탁했으나 기용되지 않아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이 누각에 올라 ‘등루부’를 지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후세는 왕찬을 추모하여 송대에 ‘중선루’로 개명하였습니다. 명대 재상 장거정도 이 누각에 올라 장대한 시 ‘제중선루’를 남겼습니다. 이후 전란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유적지만 남아 있습니다.
명월루
명월루는 동성벽의 북동 모서리 굽은 곳에 있으며, 현재는 유적지만 남아 있습니다. 남조 양나라 원제 시기에 창건되었습니다. 양 원제 소의는 징저우에서 두 차례 자사로 재임하며 합計 17년을 보냈고, 이후 즉위하여 3년간 재위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호화로운 ‘상동원’을 조성하고, 부하 유효작에게 명해 그 북쪽에 웅장한 명월루를 세우게 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누각은 상동원과 직접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후세에 부성의 북동 모서리 적루가 이 이름을 이어받아 ‘명월루’라 불렸습니다. 일본군의 전란으로 소실되었으나 유적 보존 상태는 양호합니다.
웅초루
웅초루는 징저우 성 북성벽 동단에 위치합니다. 당 초기에 창건되어 청 함풍 연간에 중건되었습니다. 시인 두보가 징저우에 머물 당시, 절도사 양성군왕 위백옥이 이 누각을 수복하자 축시를 지었는데, 시의 첫 두 구절은 “서북의 높은 누각, 웅장한 초나라 도읍, 멀리 산악이 열리고 강호가 펼쳐지네”입니다. 후량 건화 2년(912) 절도사 고계흥이 성을 쌓을 때, 이 ‘웅초’ 두 글자를 따서 누각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후에 전란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유적지만 남아 있습니다.